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 장편소설

 

라플라스의 악마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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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을 들어보았는가? 아님 라플라스 방정식은? 

나는 대학교 미적분 시간에 이 이름을 들어보았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라플라스의 이름에서 따온 라플라스 방정식. 라플라스는 위의 인용문과 같이 라플라스 악마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라플라스가 제시한 '라플라스의 악마'에 대응하는 인물을 떠올려 이 책을 쓰게 된다. 

 

끊임없이 '아이디어 고갈'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어느 순간 '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을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나는 정을 중심으로 인간을 묘사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번에는 그런 쪽으로 써보자'라고.

- 히가시노 게이고

 

 

책의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본 작가이니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일본어인지라 읽는데 조금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등장인물들과 주인공과의 관계 등을 메모하면서 읽었는데 그게 이야기를 빨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많았다는 것 빼고는 초반부터 나의 궁금증을 자극하여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공이 뭔지는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공대 출신 작가였다니. 그래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러한 개념이 담긴 책도 좀 더 수월하게 쓸 수 있었던걸 지도. 나 또한 공대 출신으로 책 제목에 '라플라스'라는 명칭을 봤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사실 라플라스 방정식이 뭐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냥 반가웠다. 

 

아무튼 책에는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물리 개념이 등장하면서 어렵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물리 법칙은 소재에만 적용된 거라 물리를 배우지 않은 독자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답게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과 생각지 못한 반전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서 긴 장편소설이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책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이었는데 외사랑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책 보다 라플라스의 마녀가 더 내 취향에 맞았다. 라플라스의 마녀의 범인은 책을 읽다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범행 동기를 예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솔직히 범행동기가 진짜 반전이었다. 범행동기가 밝혀지는 과정부터 후반까지는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막힘없이 후루룩 책을 읽었다. 

 

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에서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들의 마음과 감정을 배려있게 잘 다루어 그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기본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 책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인간을 원자로 비유하지만, 우리 세계에서 원자는 꼭 필요한 존재임을 책 마지막에 강조하면서 작가의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은 몇몇 천재들이나 당신 같은 미친 인간들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야.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요소야.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 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사건의 배경을 알지 못하는 범용한 사람들은
이토록 성실하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 온 것이다.
이것이 의미 없는 일일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의미 없는 노력이란 이 세상에 없다. 이것 또한 원자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 그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이번 작품 또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소재 자체가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이 작가의 책은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