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주 에세이, 배움의 배신

동생의 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그 즉시 손에 집어 한 장을 읽어보았다.

책의 첫 장은 ‘나는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는 프롤로그의 제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에는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배우기를 좋아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에서 “바로 이건 내 이야기야!” 하고 생각했다. 나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제껏 수많은 것들을 배워왔지만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거의 없고, 배우는 와중에도 매번 흔들렸으며, 항상 새로 배울 것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상기하는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문장은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뛰어들어 배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배우는 습관’ 덕분에 성공할 줄 알았지 ‘배우는 습관’ 때문에 길을 잃고 이렇게 오랫동안 방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다.

 

실제로 나는 꽤 오랫동안 방황을 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중상위권을 유지했고, 새롭게 뭘 하든 중간 이상은 했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가지든, 어떤 회사를 가든 빠르게 자리 잡고 30대에는 돈도 많이 벌고 자리를 충분이 잡았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교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을 그만두고 28살까지 방황하다 이제야 제대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새로운 분야, 새로운 직장에서 갓 1년을 근무한 병아리 회사원인 것이다. 대학원까지 진학했으나 결국 새로운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저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자신의 경험담과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하나하나 풀어 이야기 한다. 저자가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내다 보니 작가의 마음도 잘 와닿았고 글이 술술 읽혔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목적과 방향 없는 무작정 배움이 아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스무 살 이후, 유용하고 쓸모 있는 존재로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배움을 택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열심히 배우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경험해 온 모든 배움은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린 헛발질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있고 나를 비롯한 주변 세계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저 공부를 한 것일뿐, 제대로 된 배움 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이 넘고 나를 다시 배우면서인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배움’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한 시작점 뿐이었는데, 나는 이 사실을 많이 헤매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공부가 곧 ‘결과’라고 착각하며 그 안에서 오래 머물렀고, 나는 내가 무용한 존재이자 불안한 실존임을 깨닫는 데 스무 살 이후의 이십 년을 썼다.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눈 앞의 것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공부일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지는 공부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나 또한 경험했다.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을 글을 통해 구체화하여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볍고 술술 읽히지만, 열심히 살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한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